인스타그램(Instagram)의 영향력 조금 맛보기

인스타그램의 영향력

2019년 말에 인스타그램은 다른 사용자들의 사진에서 좋아요 숫자를 볼 수 없도록 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후 몇 달을 지켜본 결과 그런 변화가 확실히 사람들의 행동에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비록 인스타그램이 그 영향을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말입니다. 애덤 모세리는 좋아요 수를 감춘 것이 인스타그램에 대한 심리적 압박을 줄이고, 경쟁의식을 좀 덜 갖게 만들어사용자들이 다른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을 줄이려는 의도라고 설명했어요. 또한 인스타그램은 사용자들이 피드에 새로 올라온 게시물을 전부 모면 이를 알려줘 스크롤링을 멈출 수 있게 했어요. 두 가지 조치는 미디어와 셀럽들로부터 칭찬을 받았어요. 인스타그램은 커뮤티티의 웰빙을 지원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그러나 언론 보도는 없었지만 전혀 다른 메시지를 보내는 변화가 또 하나 일어나고 있었어요. 사용자들의 의견을 묻는 팝업이었어요. 팝업은 그들의 실적에 대한 분석을 더 많이 원하는지 물었어요. 이들 별도의 차트와 그래프는 사용자의 계정이 주로 어느 연령대에 도달하는지, 그 주에 언팔로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았는지, 어떤 게시물이 가장 인기가 있었는지 등을 알려주는 것으로 오랫동안 인플루언서와 브랜드들이 사용해 온 것들이었어요. 이제는 일반인들도 인스타그램의 무료 데이터 도구를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처음에 10대들은 자신을 디제이모델이나 배우라고 소개하면서 프로필에 직업을 장난으로 기입했어요. 그런데 이 분석 도구를 클릭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자 아예 기본 서비스가 되고 말았어요. 물론 누구나 자신의 실적에 대한 데이터를 더 많이 원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팔로하기를 원하는 게시물을 만드는 것이 인스타그램의 의도가 아니었던가요?

기술 산업은 원래 수치와 트렌드 분석에 집착하지요. 그리고 페이스북은 사람들이 뉴스피드에서 원하는 것을 주기 위해 그런 수치와 분석을 계속 정교하게 만들었어요. 따라서 애당초 이들의 집착은 예술 창조성을 기반으로 한 앱과 양립할 수 없는 것 같았어요.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페이스북은 인스타그램에 그들의 정신을 주입했습니다. 인스타그램이 요즘 문화의 일부가 됐습니다.  개인과 브랜드의 경계는 모호해졌어요. 성장과 연관성을 위한 편법은 데이터에 힘입어 이제 온라인에서 생활하는 현대인들에게 그 편법을 더욱 부추기고 있었습니다. 인스타그램이 좋아요 숫자로 무엇을 하든, 우리의 커뮤니케이션은 더욱 전략적으로 바뀌었어요. 인스타그램은 자신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표현하도록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과 남을 의식하고 실적을 추구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데이터가 있으면 복잡한 정서나 인간관계를 처리하기 쉬운 대상으로 변형시킬 수 있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팔로워들이 그 사람들의 삶이나 브랜드에 대한 관심의 수준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좋아요는 좋은 콘텐츠의 다른 표현이고요. 댓글은 그런 콘텐츠에 마음을 쓰는 사용자와 같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숫자를 목표로 삼는 것은 마크 저커버그가 저질렀던 것과 같은 실수를 개인적으로 저지르는 것입니다. 저커버그는 소셜 네트워크의 사용자 숫자를 늘리고 그들이 그 앱에서 보내는 시간을 늘리는 것을 조직의 목표로 삼았어요. 성장 미션은 직원들에게 목표를 제시하지만 또한 조직의 맹점을 드러내고 지름길과 편법을 택할 동기도 함께 던지게 됩니다.

인스타그램을 사용하는 사람이 좋아요에 태연하기 어려운 것처럼, 페이스북은 직원들의 동기를 바꾸는 데 애를 먹을 것입니다. 저커버그는 의미 있는 교제라는 관점에서 소셜 네트워크의 진전 정도와 그곳에서 즐겁게 보내는 시간을 측정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문제는 그 성장이 무엇으로부터의 성장인가 하는 점입니다. 그들도 결국은 하나의 기업이지요.

인스타그램의 창업자들이 떠나고 난 뒤 몇 달이 지났을 때 그들의 앱은 페이스북의 인스타그램Instagram from Facebook’으로 브랜드 네임이 바뀌었습니다. 인스타그램 DM을 책임지는 그룹은 페이스북 메신저 팀 밑으로 들어갔어요. 2019년 말에 저커버그는 인스타그램이 주최하는 콘퍼런스에 카메오로 출연해 사람들과 셀카를 찍었다고 합니다. 내부적으로 그는 틱톡TikTok에서 인스타그램을 이용해 사진을 찍는 문제를 거론했어요. 틱톡은 페이스북의 시장 지분을 위협하는 최고의 적수로, 스냅챗을 대신하기 위해 만든 중국의 앱이에요.인스타그램의 광고 횟수는 증가했습니다. 알림도 더 많아졌고 팔로잉할 대상에 대해 개인화된 추천도 늘어났어요. 페이스북의 가족이 된다는 것은 수익을 튼튼히 보강한다는 뜻이고, 아울러 메인 소셜 네트워크의 성장률 둔화를 막기 위해 타협한다는 의미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인스타그램에서  가장 중요한 팬, 그러니까 이 앱을 통해 유명해지거나 부자가 된 사람들은 외모를 유지하는 어려움에 대해 공개적인 발언을 계속해 왔어요. 인스타그램은 개인적인 경로를 통해 너무 완벽해지려고 애쓰지 말고 자연스러운 모습이나 약점을 담은 콘텐츠를 올려보라고 조언했어요. 완벽함은 더 이상 진기한 대상이 아니라고 그들은 말했어요. 이제는 약점이 좀 있어야 참여율이 높아지지요. 그래야 더 친근감을 느끼기 때문이에요.

주기적으로 올라오는 질문들도 있어요. 정부는 페이스북의 가장 좋은 대안 역시 페이스북이 소유하고 있는 앱이라는 사실에 새로 눈을 뜨는 중입니다. 미국 FTC와 법무부는 페이스북이 독점 기업인지 조사 중이며 인스타그램의 인수 과정도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고 합니다.

이 책은 원래 코로나-19로 인해 미국에서 락다운이 시작될 때 첫선을 보였다고 합니다. 책에서 종종 설명한 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 생활Instagrammable life’을 사는 사람들의 능력이 오랫동안 정지되었던 시기와 거의 일치합니다.

인스타그램은 집 밖에서 늘 곁에서 함께해 왔기 때문에 일부는 자신의 경험을 시각적으로 기록하고 관리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창업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사람들이 앱에서 보내는 시간은 앱이 자극하는 창의성만큼 중요하지 않았어요. 그러나 여행이나 패션이나 식사를 비롯하여 인스타그램이 촉발하는 체험 경제 전반이 흔들렸을 때, 사용자들은 앱을 멀리하기보다 오히려 훨씬 더 자주 앱에 접속하면서 인스타그램 문화를 바꿔갔다고 합니다. 실제로 팬데믹 기간에 사람들은 스크롤 이외에 할 일이 거의 없었으니까요.

좋아요와 팔로워라는 수년간의 관행을 통해 사용자들은 하나의 게시물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반응에 지나칠 정도로 민감해져가고 있어요. 게다가 지금은 전 세계 모든 사람이 힘겨운 싸움을 하는 중이어서 눈치 없이 자랑이나 할 때가 아니라고 합니다. 그 대신 인스타그램 피드는 텍스트 기반 콘텐츠나 훌륭한 디자인의 사진을 채워졌고, 브런치 사진이나 휴가 중에 체험한 모험 사진을 평소처럼 찍을 수 있는 정보를 함께 담아내고 있습니다. 생활 속 업데이트 내용이나 추억을 담은 내용에 뉴스, 정치, 사회 정의에 관한 토론 등이 곁들여지면서 인스타그램은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느낌을 주기 시작했어요. 또한 코로나만 아니었으면 대면을 통해 만났을 법한 사람들과 서로 교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되어 사용자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요긴한 수단이 되었어요.

이러한 변화를 목격한 인스타스램 임원들은 앱이 디지털 토론장으로 탈바꿈해 가는 현상을 이용해 이를 돈으로 바꿀 최상의 아이디어를 마련한 후 페이스북 지도부에 제시했는데요.페이스북은 정부의 강제 휴무 때문에 좌절한 기업들에게 매장의 전면을 디지털화할 것을 권하면서 특히 인스타그램을 써보라고 부추겼습니다. 인스타그램의 인플루 어서 와 브랜드를 통해 직접 물건을 살 수 있게 해주는 새로운 (shop)’체크아웃기능이 각광을 받기 시작했어요. 인스타그램은 좋아요제거처럼 사전에 계획했던 몇 가지 프로젝트를 중단하고, 크리에이터와 기업이 더 쉽게 돈을 벌 수 있도록 하는 방법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습니다.

인스타그램은 스마트폰과 타인의 관계를 최대한 이용해 디지털 인증이라는 보상을 받고자 각자의 삶을 카메라로 담아내도록 이끈 최초의 앱입니다. 인스타그램의 이야기는 사용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제품을 만들고 그에 대한 성과 측정 방법으로서 소셜 미디어 회사가 내린 내부의 결정이 우리의 생활 방식을 어떻게 바꿨으며 누가 경제적으로 보상을 받는지 등을 알려주는 확실한 교본입니다.

 출처 : 위기에도 10,000% 성장 인스타그램 시작과 성공 노 필터#No Filter 사라 프라이어 지음 이경남 옮김 글(책) 참조.

태국의 역사 조금 맛보기

태국의 역사 맛보기

태국의 면적은 51.4로 한반도의2.3배입니다.지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남북으로 길이가 1,620km에 이르는 긴 나라입니다. 동서로도 가장  넓은 곳은 780km에 달합니다. 태국 인구는 6,900만 명(2020 UN 기준)으로 한국보다 많습니다. 그런데 태국 면적이 우리나라보다 크기 때문에 인구밀도는 한국이 높습니다. 태국의 인구밀도는 1 127명이고, 한국은 515명입니다.

현재의 태국은 저출산과 고령화가 걱정입니다. 출산율은 1,53명으로 일본 1.43명보다 약간 높은 수준입니다. 한국은 1.05명입니다. 출산률은 80년대 6.6%에서 2000년대 2.2%로 급감했습니다. 그러나 인구 증가율이 떨어지자 경제 발전의 동력을 상실하고, 고령화로 인한 의료비 증가에 부담을 느끼고 있습니다.

태국은 다민족 국가입니다.라는 나라 이름에 나타나듯 타이족이 85%로 다수를 차지합니다. 다음이 회교로 약 12~15%의 상당한 비율을 차지하지요. 2%의 말레이 계열은 말레이시아와 접한 남부지방 사람들입니다. 방콕에서도 터번을 쓴 남자, 히잡을 두른 여성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데 이들이 남부 출신 무슬림입니다. 대형 쇼핑몰에는 무슬림을 위한 기도실도 있습니다.

태국은 입헌군주제 국가입니다. 왕은 존재하지만 통치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태국의 왕은 현실 정치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이것이 다른 입헌군주국과 비교해 태국 정치의 매우 독특한 점이라고 말합니다. 정부 형태는 의원내각제(내각 책임제)입니다. 국회의원을 뽑으면 의회 다수당의 수장이 총리가 된다고 합니다. 영국, 일본 등 왕이 있는 나라에서 의원 내각제를 많이 채택한다고 합니다.

태국의 GDP 4,873억 달러(한국:1 6.190억 달러), 1인당 GDP는7,187달러입니다.(한국 31,346달러),한국과 비교해 경제 규모는 약 3배 정도 차이가 난다고 보면 됩니다. 경제 규모와 물가가 비례하는 건 아니지만, 체감상 방콕 물가는 서울1/2~1/3 수준인 것 같습니다.

정말 많은 한국 관광객이 태국을 방문하는 만큼 인적교류도 활발합니다. 2018년을 기준으로 태국을 방문한 한국인은 178만여 명이고, 한국을 방문한 태국인은 56만여 명입니다. 한국 내 태국인은 이보다 더 많은 약 19만 명인데 대부분 외국인 노동자로 일합니다. 다만 국내 불법 체류자의 약 49%가 태국인이라고 하니 실거주자의 수는 더 많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원래 타이 민족은 지금의 태국 땅에 살지 않았다고 합니다.

태국은 타이족(85%), 화교(12%), 말레이(2%) 등으로 이뤄진 다민족 국가입니다.아무래도 가장 높은 비율을 가진 타이족이 중심이 되는데, 이들이 세운 첫 번째 정통 왕조가 1257년에 세워진 수코타이(Sukhothai)입니다. 이 시기라면 몽골 제국이 서역뿐 아니라 고려까지 침공하던 때이니 본격적인 태국의 역사는 꽤 늦은 셈입니다. 그럼 대체 그전까지 타이 민족은 어디에 있을까요? 13세기라는 비교적 가까운 시기에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것일까요?

타이족이 어느 지역에서 왔는지는 다양한 설이 있습니다. 가장 유력한 건 오늘날 중국의 윈난성에 해당하는 운남 지방에 타이족이 처음 살았다는 것입니다. 1253년 몽골제국이 이 지역을 공격하자 타이족은 인도차이나반도 북부, 오늘날 태국 북부지역으로 이동합니다. 타이족이 오기 전에도 태국 땅에는 고대부터 인류가 살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국가를 형성하지 못하고 몇몇 문명으로만 남았다가 10세기부터 크메르 제국에 점령당합니다. 캄보디아의 옛 왕국인 크메르 제국은 9세기에서 13세기 사이에 전성기를 맞으며 동남아시아 전역을 재배했습니다. 그 크메르 제국의 수도가 여행지로 유명한 앙코르와트입니다. 앙코르와트를 다녀온 사람, 곧 갈 사람이라면 EBS에서 제작한 특별기획 다큐멘터리 앙코르와트를 추천합니다.

TIP 태국 왕조 순서

수코타이(1257~1350)→아유타야(1350~1767)→톤부리(1767~1782)→짜끄리(=라다나 꼬신, 1782~현재)

타이의 시작, 수코타이 왕조

수코타이는 타이 민족의 첫 번째 정통 왕조로 본격적인 태국 역사의 시작입니다. 한국의 삼국시대처럼 동시대에 파야오(Phayao), 란나(Lanna) 왕조가 있었습니다. 수코타이의 3대 람캄행 왕(Ramkhamhaeng, 1279~1298)은 이들과 동맹을 맺고, 몽골의 침입으로 약해진 크메르 제국을 몰아냈습니다. 이 람캄행 대왕은 한국으로 치면 세종대왕급입니다. 영토를 라오스와 미얀마까지 확대했고, 불교를 받아들였으며, 타이 문자도 만들었습니다. 또한 람캄행 대왕 비문은 태국의 중요한 역사 사료로 태국 국립박물관에 있습니다.(, 비문의 진위 대한 논란이 있습니다). 국립박물관은 카오산 로드와 가까우니 한 번 들러보길 바랍니다. 람캄행 왕의 이름을 단 람캄행 대학교도 있는데 캠퍼스가 넓고 아름다워 한 번 둘러보는 것도 좋습니다.

#태국 국립 박물과(페이스북)

www.facebook.com/nationalmuseumbangkok 홈페이지보다 페이스북에서 더 많은 소식을 만날 수 있습니다.

태국을 통일한 아유타야(Ayutthaya, 1350~1767) 왕조왕조

방콕에서 당일치기 투어로 다녀오는 아유타야가 바로 이 아유타야 왕조의 수도입니다. 아유타야는 태국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인 417년간 왕조를 유지했습니다. 경제력도 막강했는데, 중국뿐 아니라 일본, 유럽 국가들과 무역을 활발히 하는 부자나라였습니다.

아유타야 시기 타이 민족은 미얀마와 수많은 전쟁을 치렀는데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에 비유되곤 합니다. 지난한 전쟁과 미얀마가 아유타야를 철저히 파괴한 일로 오늘날까지 태국과 미얀마의 국민감정은 좋지 않습니다. 태국에서 일하는 미얀마 노동자들이 100만에 이르는데 이들에 대한 차별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라고 합니다.

화교가 세운 톤부리(Thon Buri, 1767~1782) 왕조

톤부리 왕조는 15년 동안 짧게 존재했습니다.아유타야 시대에 무역이 활발했고 이때 화교들의 경제력이 성장했습니다. 아유타야가 멸망하자 화교인 딱신(Taksin)이 차오프라야 강 서쪽의 톤부리를 수도로 새 나라를 세웠습니다. 태국 전 총리이자 재벌인 탁신(Thaksin)과는 이름만 비슷할 뿐 관계없습니다.

유명 관광지 왓 아룬(Wat Arun)이 있는 지역이 톤부리입니다. 왓 아룬도 딱신 왕이 왕궁의 사원으로 지었습니다. 톤부리 왕조는 빠르게 옛 아유타야의 영토를 수복해갔지만 딱시 왕은 말년에 정신병이 들어 포악해졌습니다. 결국 그의 친구이자 오른팔이었던 짜끄리(Cakri) 장군이 딱신을 몰아내고 새 왕조를 세웁니다.

현대로 이어진 짜끄리 왕조(Cakri, 1782~현재)

라 따나 꼬신(Rattanakosin)왕조로도 부릅니다. 태국은 왕이 존재하는 나라입니다. 짜끄리 장군이 톤부리 왕조를 무너뜨리고 세운 나라가 지금의 태국입니다. 우리로 치면 조선이 무너지지 않고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느낌이겠습니다. 짜끄리 왕조, 라따나꼬신 왕조, 혹은 방콕 왕조라고도 부릅니다. 이 왕조는 차오프라야 강 동쪽 방콕으로 수도를 옮기는데 관광지인 왕국과 왓 포가 있는 곳입니다. 왕궁과 인접한 차오프라야강 동쪽이 서울의 종로 같은 구시가지고, 관광객들이 주로 쇼핑을 하는 시암, 스쿰빗이 강남 같은 신시가지입니다.

가장 유명한 왕은 라마 5세 출라롱콘 대왕(Phra입니다. 재위 기간은 1853년9월 20일~1910년즉 유럽의 제국주의 시대였습니다. 그는 서구식 교육을 받은 최초의 왕으로 노예제도를 폐지하는 등 근대적 개혁정책을 성공시켰습니다. 가장 큰 업적은 서구 열강으로부터 독립을 지켜낸 것. 태국은 제국주의 시기 독립을 지킨 몇 안 되는 아시아 국가입니다. 이른바 대나무 외교라 해서 영국과 프랑스 사이를 오가는 유연한 외교를 펼쳐 독립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입헌군주국 태국(Thailand)의 탄생

1932년 피분 송크람이라는 군인이 쿠데타로 ‘시암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최근까지도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태국 쿠데타의 시발점입니다. 이때부터 태국은 입헌군주국이 됩니다. 원래 나라 이름은 시암(Siam)인데, 혁명 후 1939년에 나라 이름을 지금의 태국으로 바꿉니다. 방콕 시내의 시암 역, 쇼핑몰 등 시암이라는 이름의 지명이나 브랜드명을 지금도 방콕 곳곳에서 접할 수 있습니다.

시암 혁명으로 당시 왕이었던 라마 7세가 퇴위하고 망명을 떠납니다. 정부는 해외 유학 중이던 라마 8세를 왕위에 앉히지만, 1946년 의문의 사고로 세상을 떠납니다. 1946 6 9일 그의 동생이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는데, 그가 라마 9세 푸미폰 아둔야뎃 왕입니다. 푸미폰 국왕을 쿠데타를 중재하고 농촌개발 프로젝트를 이끄는 등 태국 현대사에서 굵직한 역할을 하며 전국민적 지지를 받았습니다. 2016 10 13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푸미폰 전 국왕의 아들 마하 와치랄롱꼰(Maha Vajiralongkorn)이 라마 10세로 즉위했습니다. 그러나 왕자 시절부터 벌어진 일 때문에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시위대는 군인 출신 쁘라윳(Prayut Chan-o-cha) 총리의총리의 퇴진뿐 아니라, 군주제 개혁까지 외치고 있습니다. 사실상 전제군주제를 진정한 의미의 입헌 군주제로 바꾸자는 것입니다. 2021년 초인 지금까지 시위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출처 : 방콕에서 잠시 멈춤 Seize a moment in Bangkok THAILAND 구화상 글 참조

 

행동 경제학에 대한 훌륭한 지침서 조금 맛보기

◈ 행동 경제학에 대해 살짝 맛보기입니다. 

인재를 데려오는 가장 경제학적인 전략은 무엇일까요? 베커의 추측과 NFL 팀들의 드래프트 시스템

최고의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는 누리는 혜택 가운데 내가 가장 가치 있게 꼽는 것은 많은 흥미로운 주제에 대해 생각하고 이를 연구 주제로 삼을 수 있는 자유입니다. 앞서 살펴보았듯 나는 와인 애호가들의 심리 계좌를 주제로 논문을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 두 장에서는 얼핏 사소한 것처럼 보일 수 있는 또 다른 주제에 대해 집중적으로 살펴볼 것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NFL 드래프트 시스템과 TV 게임 프로그램 참가자들의 의사 결정입니다.

이 두 가지 주제의 공통점은 사람들이 큰돈이 왔다 갔다 하는 의사 결정을 어떻게 내리는지 들여다볼 수 있는 고유한 접근 방식을 제시하고, 위험도가 높을 때 사람들은 행동 편향을 보이지 않는다는 주장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는 것이지요.

그런 비판 중 한 가지는 NFL과 관련된 것으로 이는 시카고 가격 이론의 대표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는 개리 베커 Gary가 내놓은 것이지요. 그래서 나는 이 비판을 베커의 추측 Becker이라 불러요. 베커는 경쟁적인 노동 시장에서는 이콘처럼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인제들만 주요 지위를 차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행동 경제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질문을 받았을 때 베커는 이렇게 대답했어요. “(제한적 합리성에 의한 촉발된) 모든 효과를 제거하지 않는다면 분업은 크게 희석될 것이지요. 90퍼센트의 사람들의 확률 계산에 필요한 복잡한 분석 작업을 하지 못한다 해도 그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지요. 나머지 10퍼센트가 그런 능력을 요구하는 일자리를 차지 할거예요.

이번 장에서는 이런 베커의 추측을 검증하고 하지요. 우리는 이를 NFL 팀의 구단주, 감독, 코치에게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까요? 미리 스포일러를 주자면 그 대답은 그렇지 않다’ 예요.에 대한 연구는 나의 예전 제자이자 지금은 와튼 비즈니스 스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케이드 매시 Cade와 함께 진행했어요. 베르너 드봉의 경우와 비슷하게, 우리는 처음 만난 해는 매시가 MBA에 다니고 있고 내가 시카고대학교에서 첫해를 보내던 시절이었어요. 그녀는 무엇이 사람들을 움직이게 만드는지, 어떤 요소가 연구 프로젝트를 흥미로운 작업으로 만들어주는지 직관적으로 이해했고, 그에 대해 나는 강한 인상을 받았어요. 나는 매시가 계속 공부해 박사 학위까지 받도록 용기를 북돋아주었어요. 다행히 그는 내 말을 따랐지요. 이것은 우리 두 사람에게는 물론 나중에 그의 강의를 들은 학생들에게도 다행이었어요.

미식축구를 주제로 한 우리의 논문은 전반적으로 NFL 드래프트 제도라는 특별한 시스템에 주목하고 있어요. NFL의 팀들은 앞서 교수들이 연구실을 선택한 것과 상당히 흡사한 방식으로 선수를 영입해요. 하지만 걱정은 접어두어요. 이번 장의 이야기를 따라가기 위해 미식축구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에요.여기에서 우리가 나눌 논의는 모든 조직이 직면한 과제, 즉 직원을 뽑는 방식에 대한 것이지요. 이제 NFL 드래프트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대략 살펴봅시다.

1년에 한 번, 봄이 끝나갈 무렵 NFL 팀들은 전도유망한 선수를 선택합니다. 후보자 대부분은 대학 리그에서 선수로 뛰면서 NFL 스카우트 담당자나 감독에게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지요. 각 팀은 전년 성적을 바탕으로 차례로 선수를 지명합니다. 작년에 꼴찌를 한 팀이 가장 먼저 선택하고, 우승을 차지한 팀이 맨 마지막 순서를 차지하지요. 드래프트 과정은 그렇게 총 일곱 번의 라운드로 이루어지고, 그 과정에서 각 팀은 모두 일곱 번 ‘지명 Pick’하게 되지요. 물론 여기에서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 다양한 이유에 의해 추가 지명의 기회가 있어요. 일반적으로 4~5년에 해당하는 초기 계약 기간에 선수들은 자신을 지명한 팀에서만 뛰어야 해요. 그 기간이 끝나거나 팀에서 방출되면 선수들은 자유계약 선수 자격을 얻고, 그러면 자신이 원하는 팀과 계약을 멪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시카고대학교 교수들의 연구실 선택 사례와는 다른, NFL 드래프트 시스템의 고유한 특징은 모든 팀이 자신이 보유한 지명권을 사고팔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네 번째 지명권을 넘겨주고 그 대가로 그보다 후순위 지명권 2개를 얻을 수 있어요. 각각의 팀이 지명권을 얼마나 가치 있게 평가하는지 측정하기에 충분할 만큼 거래 사례는 매우 많았지요.(우리 연구에서는 400건 이상을 다루었어요.) 게다가 올해의 지명권과 향후 몇 년 동안의 지명권을 거래하는 것도 가능하지요. 우리는 이를 통해 NFL 팀의 시간 선호를 확인할 수 있었어요.

중요하지 않은 요소가 사실은 대단히 중요하다 경제학을 비껴간 예외적 현상들

시카고 콘퍼런스가 막바지에 이를 무렵에 제기된 과학 혁명에 대한 토머스 쿤의 이론에서 중요한 점은 많은 전문가가 기존 패러다임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수많은 예외가 존재한다고 믿을 때 비로소 패러다임의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설명하기 힘든 몇몇 사건만으로는 전통적 지혜를 뒤엎을 없어요.

쿤의 아이디어와 내 연구에 연결 고리가 존재한다는 생각이 든 것은 시카고 콘퍼런스가 처음은 아니었어요. 그전부터 줄곧 생각해오던 주제이기는 했지만, 그건 내 머릿속에서만 맴돌았지요. 최근까지 가능성 있는경력의 단계를 밟아온 학자로서, 내 연구 성과를 혁명의 일부로 소개하는 것은 지나치게 성급하고, 부적절하고, 자기 파괴적인 시도로 비칠 위험이 있었습니다. 당신 나의 목표는 이보다는 훨씬 더 겸손했어요. 그것은 논문을 몇 편 더 발표하고, 심리학을 경제학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노력이 가치 있는 일임을 입증하는 사례를 만들어가는 작업이었어요. 그럼에도 나는 쿤의 획기적인 저서 과학 혁명의 구조 The를 이미 읽었고, 패러다임 변화와 같은 사건이 경제학에서도 벌어질 수 있지 않을까 공상에 잠기곤 합니다.

과학계에서 패러다임의 변화란, 그 분야가 진화하는 과정에서 많은 학자가 실질적인 혁신을 이룩하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할 대 아주 드물게 일어나는 획기적인 사건을 의미하지요. 이와 관련해 가장 유명한 사례로 태양계의 중심에 지구 대신 태양을 두었던 코페르니쿠스 혁명을 꼽을 수 있어요. 이 혁명은 태양계의 모든 행성이 지구를 중심으로 회전한다고 여긴 기존 천동설을 대체했습니다. 행성들이 지구를 중심으로 회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는 지금의 관점으로 볼 때, 지구 중심적 모형으로 어떻게 천체의 움직임을 설명했는지 쉽게 이해되지 않아요. 하지만 천문학자들은 수 세기에 걸쳐 지구 중심적 모형으로 행성의 움직임을 꽤 잘 설명해냈어요. 행성들이 지구를 중심으로 돌고 있다고 생각되는 주 궤도를 따라 움직이는 주전원 epicycle이라는 모형을 근간에 두고 아주 다양한 임시방편적 수정을 추가하는 방식이었습니다.

* 왜 하필 예외에 대한 특집일까요?

다음 문제를 생각해보세요. 테이블 위에 카드 4장이 놓여 있어요. 여기에서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가능한 한 적은 횟수로 카드를 뒤집어보고 다음 주장이 진실인지 확인하는 것이지요. ‘한 면에 모음이 적힌 카드의 다른 면에는 항상 짝수가 적혀 있어요.’

[그림 8]  A  B  2  3

카드를 뒤집기 전에 어떤 카드를 확인할지 미리 정해야 해요. 여러분은 어떤 카드를 뒤집어볼까요? 실제로 학생들에게 이 문제를 냈을 때 가장 많이 선택한 일반적인 순서는A,2,3, B였습니다. 거의 모든 학생이 A를 뒤집어보기로 선택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 아닙니다. A카드 뒷면에 짝수가 쓰여 있지 않다면 그 주장은 확실히 거짓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두 번째로 많이 선택한 카드(2)는 사실상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아요. 설령 그 주장대로 반대편에 모음이 있다 해도 그 주장이 옳다고 증명할 수도, 틀렸다고 반박할 수 도 없어요.

대신 이 주장을 반박하지만 3번 카드를 뒤집어야 하지만, 많은 선택을 받지 못했어요. 가장 적은 선택을 받은 B카드 역시 뒤집어볼 필요가 있어요. 반대편에 모음이 숨어 있을 수 있기 때문이에요.(여기에서 문제는 한쪽에는 숫자가, 다른 한쪽에는 문자가 있다고 명시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는 점이지요. 이는 일반적으로 문제를 푸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암묵적인 가정입니다.)

우리는 이 사례에서 두 가지 교훈을 끌어낼 수 있어요.(‘Wason, 1968’ 참조) 첫째, 사람들에게는 어떤 주장을 반박하는 증거보다 이를 확인해주는 증거를 찾으려는 자연적인 성향이 있어요. 학생들이 3번 카드보다 2번 카드를 더 많이 선택했다는 사실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어요. 이런 성향을 일컬어 확증 편향 confirmation이라 하지요. 둘째, 불확실한 가정으로 다양한 반박 증거가 주목받지 못할 때, 확증 편향은 특히 더 두드러지지요. 이는 학생들이 B카드를 제일 적게 선택했다는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어요.

이번 특집 시리즈를 통해 나는 이런 반박 증거, 다시 말해 경제학적으로 예외적인 현상에 대한 성공적인 모색을 다룰 생각이었어요. 토머스 쿤의 정의대로 경제학적 예외란 기존 경제학 패러다임과 조화를 이루지 않는 사건을 말해요. 행위자가 안정적이고 명백한 취향을 지니고 있고, (결과적으로)투명한 시장에서 가정함으로써 대부분의 (혹은 모든) 해동을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 점에서 경제학은 다른 사회과학과 구분되지요. 어떤 현상을 ‘합리화’ 하기 힘들다면, 혹은 이를 기존 패러 다임으로 설명하기 위해 믿기 힘든 가정을 끌어들여야 한다면, 그것은 예외적인 현상이지요.

물론 여기에서 힘들다믿기 힘든이라는 용어는 가치 판단적 표현이며, 다른 사람들은 내 평가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어요. 이런 점에서 나는 여기에서 내가 보고하는 다양한 예외적인 현상 중 일부에 대해 독자 여러분이 직접 간략한 설명을 제시해주길 바라요.(패러다임 안에서든 밖에서든 간에). 하지만 여러분이 제시한 설명을 여기에서 발표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이론적인 반증을 제히해야 해요. 예를 들어 내가 예외적인 현상이라 제시한 사례가 사실은 세금에 대한 합리적 댕응이라고 주장하는 독자는 그 가설을 기반으로 예측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해요. 가령 세금이 없는 국가, 세금을 전혀 내지 않는 행위자, 아니면 관련된 세금 항목이 존재하기 이전의 경우에서는 그런 예외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아야 합니다. 또 거래 비용의 개념을 이용해 설명하려는 독자라면 거래 비용을 제거한 실증적 실험을 제시하면서, 그런 상황에서는 예외적 현상이 나타나지 않으리라는 예측을 내놓아야 할 것입니다.

무엇이 거래를 공정하게 보이도록 만들까요?

소비자가 기업에 분노하는 순간이라고 합니다.-퍼스트 시카고 은행, 코카콜라, 아이튠즈, 그리고 우버

대니와 네 치는장에서 소개한 해변의 맥주사례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자신들의 최근 연구 프로젝트에 나를 초대했어요. 두 사람의 목표는 사람들이 어떤 근거로 좋은 거래라고 판단을 내리는지(왜 고급 호텔이나 리조트에서 판매하는 맥주에 기꺼이 더 놓은 가격을 지불하려 하는지) 밝혀내는 것이었어요.

대니와 네 치의 연구 주제는 바로 이런 질문이었어요. 무엇이 거래를 공정하게보이도록 만들까요? 사람들은 매점에서 맥주를 살 때는 호텔에서와 똑같은 가격을 지불하려 하는 않아요. 그건 매점에서 요구하는 높은 가격을 공정한 것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 연구 프로젝트는 사실상 네 치가 캐나다 정부와 맺은 협약 덕분에 가능했어요. 이를 통해 우리는 무료 전화로 설문조사를 할 수 있었어요. 실업자를 대상으로 전화 면담을 하는 교육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우리는 그 프로그램에 설문 조사에 필요한 질문을 제공하기만 하면 되었어요. 매주 월요일 아침에 설문지 뭉치를 팩스로 전송하면 목요일 저녁에 응답자가 팩스로 도착헀어요.그러면 우리는 금요일과 주말에 응답지 내용을 정리하고, 다음 주 설문 조사를 위한 새로운 질문을 만들었어요. 지금이라면 아마존의 매캐니컬 터크 Mechanical같은 서비스를 이용해 온라인으로 쉽게 설문 조사를 할 수 있겠지만 당시만 해도 그럴 수 없었어요. 온타리오(그리고 다음으로 브리티시컬럼비아)에 거주하는 수백 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지요.

우리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시도하고 신속한 피드백을 얻을 수 있었어요. 당신의 설문 사례를 몇 가지 소개해요.

한 철물점이 눈을 치우는 삽을 15달러에 판매했습니다. 그러네 눈보라가 몰아친 다음날 아침, 철물점은 삽 가격을 20달러로 올렸어요. 이에 대한 여러분의 느낌은 어떠할까요?

전적으로 공정했어요•••••• 인정할 만했어요••••••다소 부당했어요••••••전적으로 부당했어요

우리는 첫 두 항목을 묶어 인정할 만하다로 나머지 두 항목을 묶어 부당하다로 통합해 조사 결과를 단순화했어요. 이 질문에 대한 결과는 다음과 같아요.(각각의 질문에 대해 약 100명의 사람이 응답했어요.)

인정할 만합니다;18퍼센트••••••부당합니다:82퍼센트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지요.

세상에! 대체 어떤 인간이 눈보라가 몰아친 다음 날 아침에 눈삽의 가격을 올린단 말인가요? 하지만 경제학 이론에 따르면 가격은 얼마든 인상될 수 있고, 이는 일어나야만하는 현상이에요.이런 질문은 비즈니스 스쿨의 기본 경제학 강의에 종종 등장하지요.

공급이 고정된 상황에서 눈삽 수요가 갑자기 증가했어요. 가격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요?

정답은 사람들이 눈삽을 구하기 위해 기꺼이 지불하고자 하는 선까지 가격이 상승한다는 것이지요. 가격 인상은 눈삽의 가치를 가장 높게 평가하는(사람들이 돈을 지불하고자 하는  의사를 기준으로) 사람들이 그 물건을 얻을 수 있도록 만드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MBA 학생들은 비즈니스 스쿨에서 이콘의 사고방식을 배우면서 인간의 사고방식을 잊어요. 이는 대니가 언급한 이론에 따른 맹점에 해당하는 또 다른 사례이지요. 실제로 내가MBA 학생들에게 눈삽 사례에서 가격 인상이 공정한지 물었을 때, 그들의 대답은 다음과 같이 일반적인 경제 이론의 해답과 일치했어요.

인정할 만합니다 : 76퍼센트••••••부당합니다 : 24퍼센트

경제학과 심리학이 만날 때

대표님 그렇게 위험한 투자는 하고 싶지 않아요!” –멍청한 주인과 위험손실 회피 성향

대니와 로발로의 이야기에서 소심한 선택 timid choices’은 위험 호피에 기반을 두지요. 조직의 개별 관리자는 자신이 책임져야 할 성과에 대해 종종 손실 회피적인 모습을 보여요. 기업 환경에서 손실 회피라는 자연스러운 성향은 보상과 처벌 시스템에 따라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기업에서 큰 성과는 미미한 보상으로 이어지지만, 큰 손실은 해고의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어요. 이런 환경에서는 평균적인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도전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위험 중립적인 관리자조차 대단히 위험 회피적인 모습을 보여요. 그런 조직 시스템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쪽으로 나아가게 되지요.

이런 흐름을 잘 보여주는 사례를 살펴보아요. 뉴욕에 도착한 지 막 1년이 지났을 무렵, 나는 한 출판사 임원을 대상을 의사 결정에 대한 강연을 하게 되었어요. 그 기업은 주로 다양한 잡지를 간행했고, 그날 강연에 참석한 임원들은 모두 각각의 출판물을 독립적인 시스템을 총괄했어요. 그 자리에는 CEO도 참석해 강의실 맨 뒤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었어요. 나는 임원들에게 한 가지 시나리오를 들어주었어요.

여러분의 사업부에 두 번 중 한 번 수익을 올릴 수 있는 투자 제안이 들어왔어요. 일단 투자를 하면 50퍼센트의 가능성으로 2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릴 수 있었어요. 또 나머지 50퍼센트의 가능성으로 100만 달러의 손실이 날 수도 있었어요.(50퍼센트로 200만 달러 수익을 올리는 경우의 기대 수익은 100만 달러이고, 50퍼센트로 100만 달러의 손실을 기록하는 경우의 기대 손실은 50만 달러이므로 총 기대 수익은 50만 달러가 되지요. 그리고 100만 달러, 혹은 몇백만 달러의 손실이 발생한다 하더라도, 채무 상환 능력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정도로 그 기업의 규모는 충분히 큽니다.)

[출처 : 행동경제학 마음과 행동을 바꾸는 선택 설계의 힘 MISBEHAVING The Making of Behavioral Economics 리처드 탈러 지음 박세연 옮김 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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