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산업 제대로 알기 1탄
미디어 씹어 먹기 1탄 브룩 글래드 스톤 글
파일은 1945년에 일본군의 기관총에 사살되었고 마지막으로 작성한 글은 그의 호주머니 속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생존자들은 싸늘한 시신의 기괴한 모습을 영원히 기억하게 됩니다. 무수히 널려 있는 그 끔찍한 시신들을 보게 된다면, 혐오하는 마음까지 생길 것입니다. 정보들은 통제되었습니다.
사상사 수는 날조되었고 패전은 승전으로 탈바꿈되었습니다. 게다가 마구 뒤섞인 소식들이 퍼져나갔습니다. 다만 1945년 8월 6일에 원자 폭탄이 투하될 때만은 예외였습니다. 백악관은 그 이야기를 철저하게 관리했습니다. “16시간 전, 미 공군기는 일본의 중요 육군기지가 있는 히로시마에 폭탄 한 개를 투하했습니다.” “일본은 진주만 상공에서 전쟁을 시작했으며, 그들은 그 몇 배의 보복을 당할 것입니다….”
“그것은 원자폭탄으로… 우주의 근본적인 힘을 구현하는 무기입니다.” 50년 후, 로버트 리프턴과 그레그 미첼이 주목했듯이 정부의 첫 번째 공식 성명은 부분적인 진실로 시작됩니다. 즉 히로시마에 중요한 육군 기지가 있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실제로 폭탄을 그 도시의 투하되었던 것입니다. 미국의 정책은 일본의 민간인 중심가에 폭탄을 투하하여 사기를 꺽어 버리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정부는 언론사들이 공식 언론 보도 문을 전면적으로 게재 하는 것에 크게 만족했습니다. 그 언론보도들을 자주 작성했던 오랜 원폭 지지자인 <뉴욕타임즈>의 기자 윌리엄 ‘원폭 청구서’ 로렌스는 국방부에서 급여를 받고 있었습니다. 로런스는 일본 땅을 한 번도 밞아보지 못했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나가사키에 원폭을 투하한 전투기에는 탑승해 있었습니다. 경이로운 장면입니다. 마치 지구에서 생성된 별똥별처럼 하늘로 치솟아 오르는 걸 보았습니다. 전혀 새로운 형태의 존재가 우리들의 눈앞에서 탄생한 것입니다.
로런스는 원자폭탄에 대한 다양한 보도로 퓰리처상을 수상했지만 하지만 그 폭탄의 치명적이며 낯선 특징이었던 방사능에 대해서 전혀 고백하지 않았습니다. 1967년 <에스콰이어>지에서 베트남전을 취재할 때 마이클 허는 27세였습니다. 10년 후 그는 베트남전을 심층적으로 다룬 책을 발간했습니다.
하지만 허는 기자들 역시 약간 다른 종류의 죽을 두려워했다고 말했습니다. 전쟁터에 너무 오래 머물러 있으면 우리도 언젠가는 전투를 해야만 하는 저 불쌍한 녀석들처럼 되고 말 거리라는 사실을 다들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했던 모든 일에 책임을 져야 하는 만큼이나 자신이 보았던 모든 것에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걸 나는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걸 전쟁이 가르쳐 준 것입니다
'미디어 씹어 먹기' 1탄 글 브룩 글래드스톤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