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디자이너의 이탈리아 유학 생활 후기

후회 없는 유학 생활하기

참 많은 유학생이 이탈리아로 공부를 하러 옵니다. 유학생이 많기는 한데 영어권이 아닌, 한국에서는 크게 쓸모없는 이탈리아어권이라는 특성상, 흔히 말하는 도피 유학생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기왕에 도피 유학을 생각한다면 영어라도 배울 수 있는 미국이나 캐나다, 호주를 먼저 떠올리지, 어느 누구도 굳이 이탈리아로 올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비교적 소신 있는 유학생이 대부분이고 나이가 지긋한 유학생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 유학생의 전공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건 단연코 성악으로, 유학생의 절반이라는 말도 있을 정도입니다. 두 번째가 패션이고, 건축과 공업 디자인 등이 뒤를 잇습니다. 내가 유학을 왔던 1990년 초만 해도 패션 유학이라면 이탈리아 보다는 파리나 뉴욕을 더 많이 선택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 이후로도 이탈리아 패션의 화려한 전성기인 1990년대의 영향으로 수많은 한국 학생이 패션을 공부하기 위해 이탈리아에 왔고 지금도 오고 있습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대개의 경우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 정도 어학 공부를 합니다. 그러고는 전공 공부를 하기 위한 학교에 입학해 열심히 공부하고, 졸업을 하면 현지에서 경력을 쌓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합니다. 그 중에는 아무 일자리도 못 찾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사람도 있고, 인턴사원이나 정식 디자이너로서 경험을 쌓고 밀라노에서 아예 자리를 잡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니면 어느 정도 경력이 되었을 때 한국으로 돌아가기도 합니다.

유학 생활이란 건 가족이란 울타리 안에서, 내가 태어나고 자란 땅에서 공부하는 것과는 무척 다릅니다. 갑자기 생긴 완벽한 자유와 새로운 문화에 대한 호기심, 참을 수 없는 외로움과 끊임없이 부딪히는 자신의 한계 등, 한국에서 고만고만한 친구들과 살았던 지난날들에서는 결코 겪어보지 못했던 수많은 감정과 상황들이 한꺼번에 들이닥칩니다.

나를 제어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완벽하게 주어진 자유 앞에서 모든 선택은 자신의 몫이며 결과와 책임 또한 자신의 것입니다. 물론 누구나 열심을 최선을 다하리라 결심하며 유학을 떠납니다. 그렇게 모두 비슷하게 시작하지만 몇 년 후의 결과 매우 다릅니다. 그러면 후회 없는 유학 생활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유학 생활의 기초, 언어 공부에 올인하라

나는 이탈리아어 잘한다는 말을 한국 사람들뿐 아니라 이탈리아 사람들에게서도 많이 듣습니다. 새로운 나라에서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공부하고 생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언어가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이탈리아에 첫발을 디딘 지도 19년이나 되니, 그렇게 오래 있으면 당연히 말도 잘하지 않을까 생각하지 쉽지만, 그건 절대 아닙니다.

10, 15년이 지나도 이탈리아어를 잘 못하는 사람도 많고, 2~3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 아주 잘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는 이탈리아어 잘한다는 말을 이탈리에서 생활한 지 3년이 지날 무렵부터 듣기 시작했습니다. 돌이켜 생각하면 그때에 비해 지금은 단어의 양이나 전문적인 용어 등은 많이 늘었겠지만, 예전에도 이미 지금 같은 발음과 억양이었고 문법 수준도 비슷했습니다.

내 생각에는 초기 유학 생활 1~2년에 미래의 언어 실력이 판가름 납니다.년을 살면서 이탈리아어를 못했는데 더 오래 10년을 산다고 해서 그저 세월이 선물하는 것처럼 말이 저절로 늘지는 않는다는 말입니다. 바꿔 말하면, 잘할 사람들은 이미 초기부터 잘하기 시작해서 쭈욱 잘하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이탈리아 사람보다 이탈리아어를 더 잘한다는 소리도 듣지만,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는 그야말로 ‘차오 Caio안녕’밖에 몰랐습니다. 아름다운 중세 도시 페루지아에서 가장 초급인 1단계 강의를 듣는데, 이탈리아 선생의 말을 1퍼센트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때 나는 한국에서 1년 정도 취미로 일본어를 배워서 어느 정도 말하고 듣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마침 우리 반에 일본 상사에서 주재원으로 나온 회사원 3명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준비된 주재원들답게 일본에서 확실하게 기초를 공부하고 온 상태라 그들에게 물어보고(물론 이탈리아어가 아닌 일본어로), 그들의 일본어 사전도 함께 봐가며 공부했습니다. 그렇게 근근이 초급 석 달을 마쳤지만 이탈리아어는 아직도 그야말로 암흑의 세계였습니다. 그래도 일단 무조건 열심히 단어를 외웠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단어를 외우며 초급 2단계 3개월을 마칠 즈음 어느 날, 갑자기 말이 확 트이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동사 변화와 성별 변화가 많은 이탈리아어가 나도 모르게 입에서 스르륵 흘러나오는 것을 느낀 날의 기쁨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할 정도입니다.

그때부터는 이탈리어가 쑥쑥 느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는데, 그 첫 관문에 이르는 것이 가장 중요한 듯합니다. 언어는 힘입니다. 언어만 잘해도 유학 생활의 반은 접고 들어갑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언어 공부기간을 후회 없이 보낼 수 있을까요?

나는 무조건 단어를 많이 외우는 동시에 한국인들을 멀리하고 네덜란드,폴란드, 호주 등에서 온 여러 나라 친구들과 어울렸습니다. 외국 친구들과 소통을 하려면 죽으나 사나 이탈리아어를 할 수밖에 없고, 그러려니 아는 단어는 최대한 써먹을 수밖에 없습니다. 수업에 이어 여가 시간, 즉 나의 일상을 이탈리아어를 말해야만 사는 상황으로 몰아가는 것입니다.

한국인을 멀리하라는 말을 나쁘게 받아들이지 말기 바랍니다. 한국 사람들과 만나면 익숙한 한국말로 수다를 떨면 되니 너무나 편하고 재미있습니다. 하지만 그러다 보면 나는 언제 이탈리아어를 사용할 수 있을까요. 수업 시간에 듣는 것만으로는 어림도 없으니 실생활에서 계속 이탈리아어를 써야만 말이 늡니다. 물론 한국 친구들과 놀면서도 외국 친구들과 잘 어울리면 최상이겠지만, 외국 친구들보다 한국 친구들과의 만남이 훨씬 재미있기 때문에 냉정하게 선을 긋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친구끼리 함께 유학을 오거나 부부가 함께 와서 언어 수업을 듣기 시작하면 수업 시간뿐 아니라 쉬는 시간, 그 외의 일상도 늘 함께하기 때문에 말이 좀처럼 쉽게 늘지 않습니다. 나의 경우 친구 E는 나보다 먼저 유학을 와서 이미 중급 코스를 듣고 있었기에 학교에서 어울릴 수 있는 시간이 많이 않았습니다. 또 나보다 몇 달 늦게 이탈리아에 도착한 남편이 초급 코스를 들을 때쯤 나는 이미 중급 코스를 듣고 있었기에 학교에서는 함께 있을 시간이 거의 없어 외국 친구들과 많이 어울릴 수 있었습니다. 그 후로 나는 부부가 함께 유학을 올 경우 되도록 클래스를 따로 해서 공부하는 방법을 많이 권합니다.

기회가 되어 친절한 이탈리아 친구들을 사귈 수 있다면 최상입니다. 또래일 수도 있고 나보다 더 어리거나 아니면 마음 좋은 아줌마, 아저씨들일 수도 있습니다. , 할머니할아버지들은 정정하다면 상관없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옹알이처럼 발음이 분명치 않거나 사투리가 심한 경우도 있으니 참고할 것. 마지막으로 이탈리아인 애인이 생기는 경우 대부분 이탈리아어가 눈부시게 발전하고 이탈리아 사회에 아주 빨리 적응하게 됩니다.

*우물 밖 개구리가 되기 위해 틀을 깨자

공부를 할 때는 여러 가지 힘든 일이 많지만 지나고 나서 생각하면 그때가 가장 좋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학생 때가 가장 좋았다는 말은 한국에서건 외국에서건 통용되는 불멸의 진리인 듯합니다.

현지에서 공부를 하면서 힘든 것은 언어에 대한 스트레스나 타국에서의 외로움 등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가장 비참한 것은 자신의 한계를 느낄 때일 것입니다. 패션처럼 창의적인 발상을 요구하는 분야의 공부는 그 한계라는 것이 상상력과 창의력의 한계를 말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한국에서 의상학과에 다닐 때는 그렇게 칭찬받던 스타일화 솜씨도, 미술대학을 우수하게 졸업한 사람의 기가 막힌 드로잉 솜씨도 막상 여기서는 큰 이점이 되지 못합니다. 그런 것은 패션 디자이너가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디자이너 중에는 미우치아 프라다, 로메오 질리, 알베르타 페리티 등 그림을 전혀 못 그리는 디자이너도 많은데, 일러스트레이터가 되려면 그림을 잘 그려야 하지만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서는 그림 솜씨보다 창의적인 발상과 아이디어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디자인 수업 시간에 교수가 스타일화를 못 그렸다고 잔소리하는 경우도 없습니다. 이탈리아를 비롯한 각국에서 모인 학생들은 저마다 색깔이 분명한 스타일화를 그립니다. 그 중에는 아주 못 그린 듯해도 한 번 보면 절대 잊을 수 없을 만큼 개성이 강하게 표현된 작품도 많아서, 스타일화 교과서의 전형 같은 자신의 그림이 갑자기 너무나 평범해 보이는 경험을 해본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도무스 아카데미에서 공부할 때 영국인인 필립은 특별해 보이지도 않았고 아주 조용했음에도 특유의 감성과 크리에이티브한 발상으로 기상천외한 작업들을 해와서 모두에게 상대적인 재능의 부족을 느끼게 했습니다. 특히 우리 한국인들처럼 주입식 교육을 받으며 자란 사람들의 경우 내 사고는 왜 우물 안 개구리처럼 정해진 틀을 벗어나지 못하나?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화두가 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20년을 넘는 세월 동안 받아온 교육의 힘과 환경적인 요인은 정말 무시할 수 없어서, 이제 훌훌 벗어나야지 한다고 하루아침에 우물 밖 개구리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 우리는 어차피 저들보다 창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걸.’ 하면서 포기해야 할까요?

나는 일단 자신을 최대한 자연 상태로 돌려놓고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한국에서 배워온 스타일화 솜씨 나 포트폴리오 잘 만드는 방법, 최신 트렌드의 중요성 같은 건 잠시 잊어버립시다. 나보다 뛰어나 보이는 그들을 흉내 낼 생각도 하지 맙시다. 어떤 주제가 떨어지면 마음이 가는 대로, 다른 사람이 어떻게 봐줄지, 다른 친구는 어떻게 하는지, 또는 최신 트렌드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마음 쓰지 말고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작업, 내 마음에서 시키는 작업을 해봅시다.

도무스 아카데미 시절 한국에서 좀 늦은 나이에 유학 온 분이 계셨는데(나는 H언니라고 불렀습니다), 실력은 있었는데 언어가 잘 안 되어 크게 눈에 띄지 않는 학생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도무스 아카데미는 작업의 중요성만큼 프레젠테이션의 중요성을 강조해서, 한 작업이 끝나면 개인적으로 교수에게 제출하거나 하는 방식이 아닌 클래스 전체 학생과 교수 앞에서 공개 프레젠테이션을 하게 했습니다.

현재 클라이언트에게 프레젠테이션을 한다는 가상 시뮬레이션 상황에 학생들이 익숙해지도록 하기 위한 목적으로, 프레젠테이션이 곧 그 수업의 시험이기도 했습니다. 같은 작업이라도 클라이언트의 마음을 단박에 잡아끌 수 있도록 자신의 작업을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게 학교가 지속적으로 훈련을 시켰다고 보면 됩니다.

도무스 아카데미는 현역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을 교수로 초빙하여 하나의 프로젝트(수업)를 진행하는 방식이 많았습니다. 디자이너 스테판 존슨 Stephan이 수업을 할 때의 일입니다. 몇 달간 진행되던 수업의 마지막 날은 어김없이 프레젠테이션이 장식했습니다.

모두들 최대한 자신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발휘하려 애쓰며, 한 사람이 적어도 5~10분 정도의 시간 동안 자신이 작업한 그림 한 장 한 장을 가리키며 온갖 세세한 설명을 덧붙여서 교수를 비롯한 청중들에게 이해시키려 하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H언니의 차례, 언니는 자신의 작업을(커다란 A3 도화지 4~5장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일단 벽에 주욱 옆으로 세웠습니다. 물고기와 바다 등의 그림들로 기억하는데, 한눈에도 쓸쓸한 분위기가 느껴졌습니다. H언니는 모두를 한 번 둘러본 다음 조용한 목소리로 “Io sono Coreana. Ho tanta nostalgia. 나는 한국 사람입니다. 나는 많은 향수를 느낍니다.” 하더니 꾸벅 인사를 하고 프레젠테이션을 끝냈습니다.

모두가 멍한 얼굴이 채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얼마 후 침묵을 깬 사람은 스테판 존슨이었습니다. 그는 박수를 치며 너의 작업 이미지에 가장 잘 맞아떨어지는 프레젠테이션이었습니다.”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 강렬했던 프레젠테이션 기억은 지금까지도 내 머릿속에 남아 있습니다. 물론 실제로 일을 하는 상황이라면 또 다르겠지만, 공부를 하는 동안에는 다른 학생들의 천 마디 말보다 단 두 마디의 말이 크리에티브 하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나의 내면에 집중합시다.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것, 나의 마음이 시키는 대로 작업을 해봅시다. 어는 순간 나를 괴롭히던 우물에서 저 멀리 벗어나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마음 맞는 현지인 친구 만들기는 필수

현지인 친구들이 많다는 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재산입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나라가 아닌 낯선 곳이라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아무리 공부만 하는 생활이라 해도 소소한 일상의 문제들이 늘 따라붙는데 (예를 들어 집 계약 등의 문제라든가), 그런 때 믿음직한 현지인 친구의 존재는 그야말로 막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사실 언어를 공부하는 기간에는 이탈리아인 친구를 만들기가 쉽지 않습니다. 학교 친구들도 모두 외국인들이다 보니 이탈리아 친구와 룸메이트로 엮인다거나 하지 않는 한 기회가 거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전공 공부를 시작하면 아무래도 이탈리아안 친구들이 훨씬 많으니, 이때 마음에 맞는 친구를 잘 사귀어봅시다.

물론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여기에서 다시 대학 과정을 듣는 경우 같은 과의 이탈리아 친구들은 한참 어린 나이들이 대부분일 수 도 있지만, 나이에 별 상관없이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이 또 외국 생활의 장점 중 하나이니 너무 나이에 연연하지는 맙시다.

수다스러운 이탈리아인들답게 남 이야기는 물론이고 험담도 많이 하는데, 그런 자리에는 되도록 동참하지 말고 그런 친구들 역시 가까이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다가 마음이 진실해 보이고 코드가 잘 맞는 친구를 만나게 된다면 유학 생활은 훨씬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또한 엄마, 아빠와 나이가 같은 아주머니, 아저씨 친구들은 깊이 사귀면 정말 자식처럼 잘해주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피누치아Pinuccia와 에우제니오 Eugenio는대의 멋진 부부로 우리 부부로 우리 부부와는 10년 이상 가족처럼 지내왔습니다. 이탈리아 남쪽 풀리아 출신의 피 누치아는 집안일도 잘하고 음식은 요리사 수준인 데다 정도 많고 아이들을 사랑합니다. 밀라노 출신의 에우제니오는 멋있는 은발에 사람 좋은 웃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둔 그들은 우리 부부를 자식처럼 아끼고 사랑해주는데, 유진이 태어나자 자신의 손자가 태어났을 때처럼 기뻐했습니다. 물론 이탈리아 엄마, 아빠가 생기는 셈이니 잔소리도 만만치 않게 들을 각오는 해야 하지만, 함께 식사도 하고 크리스마스 파티도 함께하는 등 그야말로 가족처럼 정을 나누며 지냅니다. 우리가 원할 때면 언제나 테네리페 Tenerife카나리아 제도의 섬와 코모 호수에 있는 자신들의 별장 열쇠를 내주며 가서 머리도 식히고 며칠 쉬다가 오라고 합니다. 물론 우리도 그들을 부모님처럼 생각하며 의지합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주변에는 경쟁자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의외로 마음이 잘 맞는 친구를 사귀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일단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고, 구체적인 취향은 다르더라도 디자인과 패션, 아트를 사랑한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패션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다분히 사이코적이고 까다롭기 그지없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의외로 필이 기가 막히게 통하는 친구를 만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로레나 Lorena는 내가 루이자 베카리아에서 일하던 2000년 무렵에 처음 만났습니다. 나는 컬렉션 책임자였고 고리 나는 프로덕트 매니저로 소프라니 Soprani에서 자리를 옮겨왔는데, 우린 처음부터 서로 느낌이 통했습니다. 로레나는 루이자 베카리아와 크게 부닥친 후 4개월 만에 휴고보스 Hugo로 가버렸지만, 우리의 관계는 지속되어 그 후 데렐쿠니 프로젝트를 6년간 함께했고, 지금은 내가 론칭한 ‘Mina J Lee’의 주주이자 프로덕트 매니저이기도 합니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둘 다 아기를 낳아서 함께 밀라노에 아동복 매장 ‘by BE’까지 오픈했습니다.

10여 년을 함께 일하다 보니 때때로 칼로 물 베기 싸움도 하지만, 따로 말이 필요 없을 만큼 서로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압니다. 아무리 이탈리아에 오래 살아도 외국인으로 살다 보면 어려운 일에 부딪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피 누치아와 에우제니오, 로레나 같은 친구들의 도움을 참 많이 받습니다.

출처 :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수석 디자이너 이정민 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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