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의 하루

하루하루 교토 주아현

4월 23일

햇빛 하나 없이 비가 내리기만 해도 그 나름대로 매력 있는 여행이라고 느껴집니다. 옆에서 말동무가 되어주고 내 사진을 찍어줄 여행 파트너가 없어도 혼자라는 게 꽤 재밌어졌습니다. 그리고 이제 시럽 한 방울 넣지 않아도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쓰지 않습니다. 조금은 어른이 된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모든 이가 날 좋아하지 않아도, 혹여나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날 좋아하지 않아도 그런대로 그것을 받아들이는 게 꽤 담담해졌습니다.

달면 단 대로, 쓰면 쓴 대로 그게 삶인 것 같습니다. 어쩌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은 어린 시절 입에 달고 살던 달짝지근한 캔디나 아메리카노에 넣은 시럽이 없어도 괜찮아지는 것과 마찬가지일지도 모릅니다.

49일 벚꽃의 기적

오늘은 교토는 흐렸습니다. 그래도 비가 오지 않으니 그걸로 됐습니다. 버스를 타고 하루(Hafuu)로 비프가치를 먹으러 가는 길, 걷다 보니 첫 교토 여행 때 자전거를 타고 왔던 동네였습니다. 가방을 앞뒤로 흔들며 룰루랄라 신나게 걸었습니다. 길이 조용해서 웨이팅도 없겠지 싶었는데 가게 앞에 도착하니 웬걸, 웨이팅이 잔뜩입니다. 명단에 이름을 적어두고 사진을 찍으러 나왔습니다.

가게에서 나와 아주 조금 걸었을 뿐인데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어마어마하게 예쁜 벚꽃 명소를 발견했습니다. 고쇼미나미 초등학교 뒷골목에 짧지만 아주 강렬한 벚꽃길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잔잔하게 흩날리는 벚꽃잎들을 보면서 눈물이 날 뻔했습니다. 내가 교토에 와서 본 벚꽃 중 가장 아름다웠습니다. 눈처럼 흩날리는 분홍 벚꽃들을 멍하니 바라보았습니다. 바람에 떨어지는 꽃잎들의 색이 참 곱습니다. 혼자서 이 장면을 보고 있음에도 로맨틱하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 분위기에 더 흠뻑 취하고 싶었습니다.

이 순간은 그냥 흘려보내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뭐라도 해야겠다 싶었습니다. 쉴 틈 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다가 벚꽃나무 아래에 앉아 며칠 전에 산 벚꽃 엽서를 꺼내 지금 생각나는 소중한 살마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마쓰이 유키의 벚꽃의 기적을 들으며 순간의 감정들을 노트에 적기도 했습니다. 글을 쓰고 있는 내 손위에 살포시 떨어진 벚꽃잎 하나, 가만히 꽃잎을 바라보다가 말을 건넸습니다.

너도 혼자니? 나도 혼자야. 그렇지만 부럽지는 않아. 아름다운 순간순간들이 내 눈앞에 계속되고 있거든. 떨어지는 벚꽃잎을 보며 함께 감탄할 동행자는 없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순간들로 인해 나의 외로운 교토 여행은 일주일이 지나서도 매일 잔잔한 행복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래서 난, 외로워도 외롭지 않습니다. 이날 이후로도 나는 벚꽃이 다 떨어져서 없어질 때까지 몇이나 자전거를 타고 이길을 달리곤 했습니다.

내용은 여기까지 입니다. 가까운 서점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하루하루 교토 주아현

◀ PREV 1 NEX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