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시나리오의 기본 틀 알아보기

*자기표현의 문제

작가는 관객의 어깨에 다정하게 팔을 두르며 말을 건네요. <재미있는 걸 보여 줄게요.> 관객을 어떤 장면, 이를테면 차이나타운의 한 장면으로 데리고 가서는 이렇게 설명하지요. <기티스가 에벌린을 체포하려고 샌타모니카까지 차를 몰고 가지요. 문을 두드리면 그녀가 그를 들여보내 줄까요? 어디 봅시다. 이제 아름다운 에벌린이 계단을 내려오네요. 그를 만나서 기뻐하네요. 기티스의 마음이 누그러져서 그녀를 놓아줄 것 같은가요? 한번 봅시다. 이제 에벌린이 자기 비밀을 지키려고 싸우네요. 비밀이 지켜질 거라고 생각하나요? 어디 봅시다. 에벌린의 고백을 들으면 그가 그녀를 도와줄까요? 아니면 체포할까요? 잘보세요.

작가는 관객에 기대를 품게 하고 관객이 스스로 모든 걸 안고 믿게 만들지요. 그러고는 곧이어 진실을 활짝 열어보이면서 관객에게 놀라움과 호기심을 선사하고 자기 이야기를 거듭 되짚어보게 만들지요. 매번 뒤돌아볼 때마다 관객은 등장인물과 주변의 본질에 대해 더 깊숙한 통찰을 얻지요. 영화의 이미지 아래 가려 말로 표현되지 못한 진실을 불현듯 깨닫는 것이지요. 그러면 작가는 전혀 새로운 방향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면서 그런 놀라운 순간들을 점점 확대해서 빚어내지요.

이야기를 하는 건 관객과 약속을 하는 행위예요. 이야기에 주의를 기울여주면 당신에게 놀라움을 선사하고 당신이 상상도 못 해 본 수준과 각도에서 인생의 희로애락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주겠다는 약속. 그리고 더 중요한 건, 관객이 마치 저절로 그런 발견에 도달한 듯 느끼게끔 이 모든 과정이 너무나 쉽고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점이지요. 이야기의 전환이 훌륭하게 이루어진 대목에서는 관객의 집중력에 대한 대가이기 때문이지요. 훌륭하게 설계된 이야기는 이런 즐거움을 장면이 바뀔 때마다 선사하지요.

어떻게 자기를 표현하는지 질문을 받으면 작가는 대개 이렇게 대답할 것이지요. <내 언어를 통해서 표현하지요. 작품 속 세계에 대한 묘사와 내 인물들이 하는 대사를 통해서지요. 나는 작가예요. 때문에 나는 언어로 나 자신을 표현해요.> 그러나 언어는 작가의 텍스트일 뿐이에요. 작가의 자기표현은 언제나 이야기의 전환점에서 밀려드는 통찰에 실려 있지요. 바로 그 순간 작가는 세상을 향해 선포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게 사람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고 세상 사람들의 본성에 대한 나의 통찰이지요. 이런 상황에서 이런 이유로 사람들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나는 믿지요. 여기 내 아이디어와 내 감정이 있어요. 이제 나예요.> 이야기를 전환하는 저마다의 독특한 방식이야말로 작가들에게 가장 강력한 자기 표현 수단이죠.

언어는 그다음 이야기죠. 작품을 쓸 때 작가는 생생하고 능숙하게 자신의 문학적 재능을 발휘해요. 아름답게 써진 장면을 보면서 관객이 기꺼이 즐겁게 이야기의 전환점까지 따라오게 하기 위해서이지요. 그러나 중요한 요소임엔 틀림없지만 언어는 독자를 사로잡는 이야기의 겉모습일 뿐이지요. 관객을 이야기의 내면으로 이끌기 위한 방편일 것이지요. 언어는 자기표현의 수단이며 그 자체가 장식적인 목적이 되어서는 안 돼요.

그러니 이야기를 설계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요? 30차례, 50차례씩 장면이 작게 상당히, 또는 크게 전환하면서 매번 작가의 시각을 다양하게 표현해야 하니 말이에요. 취약한 이야기들이 정보로 통찰을 대신하곤 하는 이유가 여기 있지요. 아직도 많은 작가들이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작품의 의미를 설명하거나 더 심할 때는 <화면 밖 내레이션 voice-over narration>에 의존해요. 어떤 경우라도 이런 글쓰기는 부적절하죠. 현실에서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가짜 자의식으로 인물의 진정성을 해칠 뿐이에요. 더 중요한 점이 있어요. 관객의 인생 경험과 작가의 면밀한 설정이 만났을 때 관객의 머릿속은 보편적인 통찰로 가득해져요. 지식 전달에 급급한 산문적인 표현은 제아무리 유려하고 예리해도 이 통찰을 대신할 수 없어요.

*설정/보상

한 장면 한 장면 자신의 시각을 표현하기 위해 작가는 이야기 속 세계의 표면을 조금씩 열어 보이며 독자를 앞으로 되돌려보네 통찰을 얻게 유도해요. 따라서 이런 통찰은 설정과 보상의 형태로 짜여 있어야 해요. 설정해 둔다는 건 인식과 인식 사이에 틈을 만들어 둔다는 말이고, 보상한다는 건 관객에게 인식을 선사해서 그 간극을 메운다는 말이죠. 기대와 결과 사이에 간극이 생기면 관객은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이야기를 되짚어봐요. 작가가 미리 이런 해답을 작품 속에 묻어놓았거나 준비해 두어야만 관객이 답을 찾을 수 있어요.

*감정의 변화

배우가 눈물을 글썽이거나 화려한 대사를 줄줄 읊으며 기쁨을 노래하거나 에로틱한 장면이 묘사되거나 성난 음악을 틀어댄다고 해서 관객의 감정이 움직이는 건 아니죠. 차라리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기에 딱 적합한 경험을 그려내 관객이 그걸 체험하게 하는 게 낫죠. 전환점이 통찰만 전달하는 게 아니라 감정의 동학을 창조해야 하기 때문이죠.

어떻게 관객의 정서적인 경험을 만들어내는지 이해하려면 먼저 감정에는 즐거움과 고통, 이 두 종류만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해요. 물론 각각 다양한 변형들이 존재해요. 기쁨, 사랑, 행복, 환희, 재미, 황홀, 흥분, 고마움 등등이 즐거움의 변형들이고 번민, 두려움, 불안, 공포, 슬픔, 치욕, 불쾌, 비탄, 스트레스, 회한 등등이 고통의 변형들이에요. 본질적으로 인생이 죽는 감정은 즐거움과 고통, 둘 중 하나인 셈이죠.

이야기에서 가치가 전환될 때 관객은 감정적인 동요를 겪죠. 첫째, 관객은 등장인물과 동화돼요. 둘째, 인물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이해하고 인물이 그것을 가지기를 바라게 돼요. 셋째, 당시 인물의 상황에서 어떤 가치가 문제가 되고 있는지 이해하게 돼요. 이런 조건들 덕분에 가치의 변화가 관객의 감정을 움직이는 거예요.

주인공이 가난에 찌든 모습으로 시작되는 코미다가 있다고 해봅시다. ()라는 가치를 놓고 볼 때 이 장면은 부정적이죠. 그러다가 장면이나 시퀀스나 장을 거치면서 그의 인생이 가난에서 부로, 부정에서 긍정으로 가치의 전환을 경험해요. 인물이 자기 욕망의 대상에 다가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관객의 감정도 긍정적인 경험으로 움직여 갈 거예요.

그러나 인물의 상승세가 어느 정도 진정되면 감정도 다시 급속히 잠잠해져요. 감정은 비교적 짧고 강렬한 경험이라 한번 강하게 치솟아 달아오르고 나면 금세 가라앉아요. 이제 관객은 생각할 거예요. <멋지군요. 부자가 됐네요. 다음에 무슨 일이 생길까요?> 이제 이야기는 긍정에서 부정으로, 앞서의 가난한 상태보다 더 부정적인 상황으로 바뀌게끔 반드시 방향 전환을 해야 하죠.

효과 감소의 법칙은 이런 거예요. 어떤 일을 자주 경험하면 할수록 그 효과가 줄어든다는 것, 이야기만큼이나 현실에도 적용되는 사실이죠. 때문에 동일한 감정적인 경험이 잇따라 같은 강도로 되풀이되면 안 돼요. 처음 먹은 아이스크림은 무척 맛있죠. 두번째 것도 나쁘진 않아요. 하지만 세 번째까지 먹으면 속이 탈 나요. 처음 맛보는 감정이나 감각은 최대한의 효과를 낳아요. 곧바로 이 경험을 되풀이하려고 들면 효과는 절반 이하로 떨어져요. 똑 같은 감정을 연속으로 세 번까지 반복할 때는 본래의 효과를 거두지 못할 뿐만 아니라 부작용도 따르지요.

세 개의 비극적 장면이 비교적 잇따라 벌어지는 이야기를 가정해봅시다. 어떤 효과가 있을까요? 처음에는 눈물을 쏟다가 두 번째는 코를 훌쩍일 수 있어요. 하지만 세 번째는 웃음이 터져나올 거예요. 세번째 장면이 슬프지 않아서가 아니에요. 오히려 셋 중 가장 슬플 수도 있어요. 문제는 앞선 두 장면이 관객의 슬픔을 다 소모시켜서 마지막에는 관객을 또 울리려는 작가가 둔감해 보일 거예요. 그래서 심각한 감정의 반복이 실제로는 코믹한 장치로 자주 사용돼요.

 출처 : STORY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 로버트 맥키 ㅣ 고영범. 이승민 옮김 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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