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의 역사 인류의 오랜 발명품에 대하여

알코올의 역사 인류의 오랜 발명품 로드 필립스 지음

인류는 술을 마시기 시작한 이후로 술과 어려운 관계를 맺어왔습니다. 술에 든 알코올은 색깔이 없는 액체로, 그 자체로는 물질적인 가치나 문화적∙도덕적 가치를 조금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인류는, 다른 많은 물품에 그랬던 것처럼, 시간과 장소에 따라 다양한 가치관을 술에 부여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들 가치관은 복잡했을뿐더러 모순적인 경우도 찾아왔습니다. 더불어 술은 술을 소비하는 사회의 권력과 젠더(gender), 계급, 민족(ethnicity), 연령 같은 복잡한 특징들과 뒤섞여왔습니다.

이 모든 가치관은, 본질적으로, 알코올이 인체의 신경계에 끼치는 영향에서 비롯됩니다. 술을 마셔본 독자라면 비어(beer, 탄수화물이 당화糖化 하면서 생긴 당분이 발효돼서 만들어지는 알코올음료)나 위스키, 와인(wine,포도나 다른 과일이 발효돼서 생기는 알코올성 음료), 칵테일, 또는 술을 생산하는 데 사용된 무수히 많은 곡물로 만든 음료의 첫 모금을 들이켜는 것으로 시작되는 첫 단계나 그 이후 단계의 취기(醉氣)를 잘 알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소량의 술은 마신 이에게 행복감을 선사하는데, 그 상태에서 더 마시면 극도의 희열과 사회적 억압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 균형감각과 조정력의 상실, 혀 꼬임, 구토, 의식 상실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알코올 중독이 심해지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술을 바라보는 관점이 이렇게 상반된 데 따른 결과 술을 향한 관점이 양극화된 거였습니다. 한편에서, 알코올성 음료(alcoholic beverages), 공장에서 술을 마신 19세기 러시아 노동자부터 18세기 초에 진(gin0을 마시려고 런던의 여성 전용 드램 숍(dramshop,스피릿을 소량dram 단위로 파는 술집)에 모인 여성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의 일상적인 교제활동을 원활하게 해주는 사회적 윤활유이자 접착제로 폭넓게 활용돼 왔습니다. 역사적으로 술은 결혼식과 장례식에서 나름의 역할을 수행했고, 상업적인 행사와 정치 행사, 기타 행사를 기념해왔습니다. 1797년에 미 해군 최초의 호위함을 진수할 때 마데이라(Madeira, 마데이라 섬에서 생산되는 화이트와인)가 사용됐고, 일부 동아프리카인은 바나나 비어(banana로 결혼을 축하했습니다. 노동에 대한 대가로 술을 주는 경우도 잦았고, 유럽인들이 경제활동을 더 넓은 세상으로 확장할 때 엔느 술이 통화(通貨)로 널리 사용됐습니다. 위스키와 진, 럼은 노예뿐 아니라, 비버모피와 고프라(copra 코코넛 과육을 말린 것) 같은 물품, 영향력, 토지를 사들이는 데 사용됐습니다.

술은 마신 이의 마음이 편안해지도록 도와주고, 때로는 걱정거리를 잊게끔 도와줍니다. 술을 비판하는 많은 비판 가도 적당히 마신 술이 반드시 심각한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인정해왔습니다. 역사적으로 이런 입장을 반영한 많은 정부 당국이 여러 가지 규제로 술의 생산과 유통, 소비를 포위해서는 술의 부정적인 영향을 완화시키려고 애써왔습니다. 알코올성 음료에 함유된 알코올 함량의 통제, 아동의 음주 금지, 태번(tavern, 사람들이 모여 알코올성 음료를 마시는 사업장으로, 숙소와 식사가 제공된다)과 바(bar, 점포 나에서 소비할 용도의 알코올성 음료를 제공한 시설)의 영업시간 제한 동이 그런 규제에 해당됐습니다. 남녀가 알코올 섭취량을 자발적으로 제한할 수 있을 거라고는 자신하지 못한 탓에, 사회 구성원 모두가 술을 철저히 삼가는 편이 더 낫다고 판단한 정부들도 있었습니다.

술을 둘러싼 이런 논쟁이 물질적인 진공상태나 문화적인 진공상태에서 치러진 건 아니었습니다. 술은 거의 모든 사회에서 지위와 권력을 상징하는 강력한 표지였습니다. 고대 이집트 같은 많은 초기 사회에서, 비어는 모든 계급이 소비했지만, 와인을 소비한 계급은 엘리트뿐이었습니다. 와인만 소비한 그리스에서 와인의 품질은 천차만별이었습니다. 엘리트층이 소비한 와인은 풍미와 식감, 알코올 함유량 면에서 하층계급이 소비한 와인 하고는 완전 딴판이었습니다. 일부 경우, 술은(적어도 이론상으로는) 식민지를 지배하는 인구집단에게만 허용됩니다: 아프리카에 주둔한 일부 영국 관리는 원주민에게는 금주 정책을 집행하면서도 자신들은 술을 마셨고, 미국과 캐나다의 백인정부들도 원주민에게 동일한 정책을 실했습니다.

알코올이라는 물질 자체를 놓고 보면, 유럽인과 북미인들은 19세기까지는 술(주로 비어와 와인)을 수분 섭취용으로 폭넓게 소비했습니다. 안전하게 마실 수 있는 식수원(食水源)이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로마는 건국 후 몇 세기 이내에 여러 송수로(aqueduct)를 통해 음용(飮用)에 적합한 물을 공급받아야 했습니다. 티베르강이 오염됐기 때문입니다. 유럽(중세시대부터)과 미국(18세기부터)의 여러 도시의 도심에 있는 주요 수로(水路)와 우물은 심하게 오염된 탓에 안전한 식수원으로 쓸 수 없었습니다. 발효된 알코올성 음료는, 증류한 알코올을 물에 첨가했을 때 그러는 것처럼, 발효과정에서 많은 유해 박테리아를 죽이기 때문에 안전한 마실 거리였습니다. 술은 알코올마실 거리(drink)’가 동의어가 될 정도로 기본적인 음료가 됐습니다.’ 술을 둘러싼 논쟁은 음주 문제(the drink question)’라 불리고, ‘대량 음주(heavy대량음주 drinking)’는 물이나 차()를 많이 마시는 행위를 가리키는 게 아니었습니다.

수분을 섭취하는 안전한 형태라는 술의 쓸모는 술의 유용성을 보여주는 강력한 근거였고, 식수로 적합한 물이나 다른 비(非) 알코올성 음료를 믿음직하게 공급할 대안이 존재하지 않는 한, 그 어떤 정부도 금주 정책을 채택할 수 없었습니다. 절주와 금주(temperance and prohibition) 운동이운동이 유럽과 미국의 시(市) 정부들이 도시 주민에게 안전한 식수를 공급하려고 대규모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과 같은 시기에, 그리고 커피와 차, 기타 비알코올성 음료들이 널리 소비되기 시작한 것과 동시에 일어난 것은 전혀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그와 동시에, ‘마시기’(drinking)’라는 표현이 일반적으로 음주를 가리키기는 하지만, 안전한 물을 마시게 되기 전까지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술을 수분 섭취용으로 마셨다고 가정해서는 안 됩니다. 물은 식수로 적합하건 그렇지 않건 공짜였지만, 술은 그렇지 않습니다. 가난한 이들은 구할 수 있는 물은 무엇이건 마셔야 했는데, 이런 관행은 의심의 여지없이 그들의 낮은 기대 수명에 한몫을 했습니다. 아이들이 술을 자주 마신 것도 아니었고, 일부 사회의 여성들은 술을 마시는 걸 금지당하거나 그러지 말라는 만류를 강하게 받았습니다. 일반적으로 흔히 용인되는, 초기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알코올성 음료를 소비했다는 주장은 분명 잘못된 것으로, 이 책에서 다루는 이슈 중 하나입니다.

이 책은 술을 소비한 다양한 문화권에서 술을 취급한 방법에 대한 전체적인 조망이자, 술이 권력구조와 권력의 행사 과정,성별, 계급, 인종/민족, 세대 같은 이슈와 관련된 방식에 대한 묘사이자 설명입니다. 이 책은 유럽에 초점을 맞추고 북미도 폭넓게 다루고 있습니다. 알코올성 음료들은 다른 지역에서 기원됐을지도 모르지만, 더불어 그 음료들이 세게 전역에서 소비되는 것은 분명하지만, 유럽인들이 술을 그들의 문화에 다른 지역 사람들보다 더 폭넓게, 그리고 더 많은 양을 통합해 들였다는 것이 필자가 대는 타당한 근거입니다. 이윽고, 유럽인들은 그들의 알코올성 음료들을, 그리고 술 문화를 더 넓은 세계로 확장시켰습니다. 술은 제국주의와 식민지 건설, 탈식민지화(decolonization)과정에서 유럽인과 다른 지역 사람들이 접촉하고 협력하고 갈등하는 영역 중 하나가 됐습니다. 필자는 이 책을 쓰면서 글로벌한 관점을 채택하려고 노력했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아시아와 태평양 같은 지역의 음주 문화를 분석하기보다는 유럽의 술이 확장된 이야기를 우선시했습니다. 그런 접근방식이 이 책을 주제 면에서 더 정연하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합니다.

필자가 활용한 모든 자료의 저자에게 감사드리고 싶고, 필자가 이용한 여러 도서관과 아카이브의 스태프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영국도서관영국 도서관(the British Library)과 런던의 웰컴 의학사 연구소(the Wellcome Institute for the History of  Medicine), 프랑스의 여러 문서보관소(Archives Departementales)가 그런 곳입니다. 동료 매튜 맥킨(Matthew McKean)과 미셀 호그(Michel Hogue)는 유용한 조언을 해줬고, 닥터 로브 엘-마라기(Dr.Rob El-Maraghi)는 일부 의학적인 이슈에 도움을 줬습니다. 텍스트에 대한 유용한 비평과 제안을 많이 해준 데이비드 파헤이(David Fahey)와 토머스 브레넌(Thomas Brennan)에게도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용어 사용법에 대해

에일(Ale)과 비어(Beer)

곡물을 원료로 한 발효음료를 가리킬 때, 나는 모든 시대에 걸쳐 비어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중세는 예외인데, 그 시대의 경우에는’ 에일’(흠 없이 만들어진 술)과 ‘비어’(흡을 넣어 만든 술) 사이를 구분했습니다. 중세 말기에 유럽의 많은 지역이 마신 술이 에일에서 비어로 이행한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흡이 사용되지 않은(고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그리고 중세 초기의 갈리아 Gaul 같은) 초기 시대와(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많은 문화권 같은) 여러 문화권에서는 그런 음료를 에일이라고 부르는 게 더 이치에 맞을 것입니다.

위스키(Whiskey)와 위스키(Whisky)

위스키의 영어 철자를(아일랜드와 미국 같은) 일부 지역에서 생산된 특정 스피릿(spirits)을 가리킬 때는 ‘whiskey’라고 쓰고(스코틀랜드와 일본 같은) 다른 지역에서 생산된 스피릿을 가리킬 때는 ‘whisky’라고 쓰는 게 보편적이지만, 철칙은 아닙니다. 이 책에서는 내내 ‘whiskey’를 통칭으로 썼습니다.

'알코올의 역사 인류의 오랜 발명품에 대하여 '

 

◀ PREV 1 NEX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