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 경제와 일자리 구하기 프로젝트
코로나 시대 경제와 일자리
전염성이 매우 높은 코로나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급속히 퍼져나가자 전 세계는 비상조치로 국경을 봉쇄했습니다. 코로나 환자가 폭발하며 사망자가 속출한 일부 국가들은 내부적으로도 봉쇄령을 내려 시민들의 외출을 자제하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전 세계가 국경을 봉쇄하자 수출입을 비롯한 국제 비즈니스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집에 머물고 상점들이 문을 닫자 내수 역시 얼어붙었습니다. 자영엽자들은 파산하고 기업은 직원을 해고했습니다. 사상 최악의 실업과 취업난이 전 세계를 덮치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한 1차 충격이 높은 전염성과 치명률이라면, 2차 충격은 경제 악화입니다. 이탈리아와 미국 등은 코로나가 아직 진정되지 않았는데 봉쇄령을 풀고 있습니다. 침체되는 경제를 이대로 내버려 둘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경제와 일자리가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은 어쩌면 우리 생명을 담보로 걸 만큼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래 우리 경제와 일자리는 어떤 모습으로 변해갈지 그만큼 궁금한 것도 사실입니다.
주 15시간 근무하는 미래?
우리가 미래의 노동 환경에 대해 토론할 때 ‘전체 자동화’라는 상상을 대체로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일주일에 5일을 채우는 새롭고 다양한 일자리는 계속해서 생겨납니다.
1930년 대공황이 시작된 해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손자 세대의 경제적 가능성에 대해 글을 썼습니다. 세계 경제 질서가 무너지고 경기 침체가 확산되면서 상황이 우울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국 경제학자는 ‘세계 경제 불황•••수면 아래에서 일어나는 일이 우리 눈을 멀게 하고 있다’고 썼습니다. 그는 에세이에서 100년 후, 즉 2030년 사회는 인간이 일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발전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영국, 미국과 같은 국가들이 직면한 주요 문제는 비슷하며, 사람들은 ‘3시간 교대하거나 일주일에 15시간만 일합니다.’ 1930년에 미국,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일본의 평균 근로자는 45~48시간을 일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38시간 정도 일합니다.
케인스의 예측은 왜 틀렸는가?
케인스는 현대 경제의 아버지 중 하나로서 건설적인 위상을 가지고 있으며 통화 및 재정 정책의 근간을 세운 사람입니다. 그는 또 ‘장기적으로 우리는 모두 죽는다’는 식의 장기적 예측만을 다루는 경제학자들을 조롱하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그런 그의 주 15시간 노동이라는 예측은 생각보다 더 정확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1930년대 케인스가 살던 영국이란 나라만큼 무언가를 생산하고 싶다면, 일주일에 15시간씩 일할 필요도 없습니다. 노동 생산성 증가를 적용하면 주7~8시간이면 충분히 생산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생산성 향상은 한 세기의 자동화 및 기술 발전에서 비롯된 것으로, 적은 노동력으로 더 많은 제품을 생산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이런 점에서 현대의 선진국은 케인스 예측을 능가했습니다. 우리는 그가 예측한 시간의 절반만 일하면 그의 생활 방식을 맞출 수 있습니다.
지난 90년 동안의 진전은 업무 효율성을 고려할 때뿐만 아니라 우리가 즐기는 여가의 시간을 고려할 때도 명백합니다. 언젠가 은퇴한다고 생각하면, 어릴 때 열심히 일하고 나이가 들어서 여가 시간을 즐길 필요가 있습니다. 1930년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은퇴 명령에 도달하지도 못하고 죽을 때까지 일만 헀습니다.하지만 오늘날 사람들은 은퇴 후의 삶이 전체 삶의 3분의 1이나 됩니다.
여가의 시간을 늘리는 두 번째 요소는 가사 시간의 감소입니다. 세탁기, 진공청소기, 전자레인지가 미국 중산층의 주당 가사 시간을 1930년대보다 거의 30시간 단축해주었습니다. 이 30시간이 모두 순수한 여가로 전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가사라는 무급 노동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여성들이 유급 노동력을 옮겨갔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생산성과 효율성의 진보 덕분에 우리 모두가 시간을 보내는 방식을 더 잘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오늘날 케인스가 예측한 생산성 수준에 도달(또는 초과)한 선진국들은 왜 아직도 평균 근로시간이 30~40시간인가요?왜 많이 바뀌지 않았다고 생각하나요? 이것은 인간의 본성, 즉 좋은 삶에 대한 우리의 기대치가 점점 높아지는 것뿐 것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일과 일자리의 구성이 변하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그리고 답의 일부가 되어주는 것이 ‘삶의 방식’ 인플레이션입니다.인간은 더 많은 것이 대해 갈망합니다. 케인스는 ‘경제 문제, 생존을 위한 투쟁’을 해결하는 것에 대해서만 말했지만, 단지 생존을 위해 삶을 선택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인간은 쾌락을 추구하면서 삽니다. 우리는 항상 더 많은 것을 원합니다. 사람들이 새 옷과 넷플릭스, 해외 휴가와 같은 현대 생활의 일부를 포기하면 일주일에 15시간만 일해도 먹고살 수 있습니다. 소비재, 쾌락은 중요하지만 우리의 삶은 다른 많은 중요한 차원도 살펴보아야 합니다. 넷플릭스에 적용되는 것과 동일한 논리가 백신, 냉장곡, 재생 에너지 및 칫솔에도 적용됩니다. 전 세계적으로 사람들은 1930년보다 훨씬 더 높은 생활수준을 누리고 있습니다. 인간은 이미 조부모 시대의 삶의 질로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세 끼 식사로 채워지던 만족이 넷플릭스로 옮겨가다
경제의 생산성이 높아짐에 따라 고용은 농업과 제조에서 서비스 산업으로 이동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정신건강 상담사, 시각효과 에술가, 회계사, 블로거 등으로 일하고 있으며 이들이 하는 일은 생계에 직접 필요하지 않은 일입니다. 케인스는 논문에서 미래에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술 같은 활동을 추구할 수 있으며, 이러한 활동을 암묵적으로 존재하는 생계를 위한 직업의 세계와 분리된 형태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실제로 직업 세계는 간호사, 예술 및 고객 서비스와 같이 케인스의 추정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더 많은 활동으로 확장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지속적인 사회적 불평등은 40시간의 근로시간이라는 불평등을 만들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단순히 살아가기 위해 주 30~40시간을 일해야 합니다. 부의 분배가 더 평등해지지 않는 한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일주일에 15시간으로 근로시간을 줄일 수 있습니다. 미국과 같은 일부 국가에서는 생산성과 임금 사이의 연관성이 끊어졌습니다. 최근의 생산성 증가는 사회의 최상위 계층에만 혜택을 줍니다. 현대에는 1930년에 존재하지 않았던 사회 안전망이 생겼고, 사회보장 및 공공주택과 같은 프로그램은 사람들이 최소한의 생존을 보장하도록 도움을 줍니다. 하지만 빈곤에서 사람들을 제대로 지원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으며,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삶을 제공하는 케인스의 이상을 충족시키기에도 불충분합니다.
선진국에는 최소한의 삶을 향해 일과 사회를 구조화할 경우 모든 사람이 노동을 적게 하고도 풍족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기술과 도구가 존재합니다. 또 미래의 일자리에 대한 오늘의 토론은 전체 자동화의 미래에도 긍정적이고 환상적인 예측으로 마무리됩니다.즉 일주일에 5일을 채우는 새롭고 다양한 일자리 역시 계속 등장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케인스의 논문에서 보듯이 우리의 집단 관성은 케인스의 15시간 근무라는 예측에는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도달하지 못한다는 예측을 하도록 만듭니다.
“세계 미래보고서" 글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