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에 대한 짧고도 주목할 만한 이야기
◈ 짧게 정리한 북극의 긴 역사
온기 하나 없는 차갑고 새까만 겨울 하늘을 캔버스 삼아 신비롭게 일렁이는 빛의 물결과 북극의 초록빛 오로라, 금방이라도 얼어붙을 것 같은 북극 바다 위를 유유히 헤엄치다가 빙산氷山 위에 올라 포효하는 이 구역의 최강 포식자, 하얀 북극곰,시베리아와 북아메리카에서 매년 수천 킬로미터를 이동하면서 원시 자연과 더불어 그들만의 길을 만들어온 북극의 방랑자, 빨간 코 순록, 이들은 오랫동안 북극의 하늘과 바다, 땅을 조용하게 지배해온 원주인 原住人이라고 합니다.
큰 곰의 땅, 북극에 이런저런 이유로 발을 디딘 인류는 절박한 문제였던 먹거리 부족과 추위를 극복하고 삶을 이어가고자 차가움과 어두움, 배고픔을 이겨내는 나름의 방법을 터득했다고 하네요. 훗날 원주민原住民 이라고 불리게 된 이들은 사냥과 목축을 익혀 차츰 그 땅과 바다의 새로운 주인이 되어갔습니다.
하지만 그 후 문명이라는 무기를 창작하고 북극에 나타난 탐험가와 이주민移住民은 차가운 땅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북극 정복시대의 서막을 열었다고 하네요. 15세기 대항해시대가 시작되자 신화와 전설의 세상이었던 북극이 점차 주목받게 되었고 특히 바다를 장악해 무역로를 확보하려 했던 유럽 국가들은 북극해를 거쳐 인도와 중국으로 가는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고자 경쟁했어요. 영국은 항로 개척에 현상금을 내결기까지 했어요. 이에 당대의 내로라하는 탐험가와 군인들이 도전에 나섰지만, 모두 북극의 혹독한 날씨를 이기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하거나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되었어요.
하지만 증기선이 등장하는 18세기 들어서면서 상황이 바뀌었어요.
마침내 1879년 핀란드 사람이면서 스웨덴에서 활동했던 과학자이자 탐험가 아돌프 에리크 노르던셸드Adolf가 베가Vega호를 타고 스웨덴 칼스크로나 Karlskrona를 떠난 지 1년 1개월 만에 베링 Bering 해를 통과해 사상 처음으로 북동항로를 완전히 항행한 것입니다. 또 다른 북극항로인 북서 항로는 잘 알려진 대로 1911년 인류 최초로 남극점에 도달했던 노르웨이의 위대한 탐험가 로열 아문센 Roald이 1906년 요아Gjoa호를 타고 항행에 성공했어요. 한국도 노르던셸드의 항행이 성공한 지 꼭 130년 만인 2009년 북동항로를 통과하는 상업 운항에 성공한 바 있어요.
북극 정복에 성공한 이주민은 원주민과 달리 생존에 필요한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가져갔고, 기계 소음과 각종 유해 물질을 쏟아냈어요. 이주민은 동물 가죽과 물고기, 황금과 보석, 석유와 가스를 찾아 북유럽에서 시베리아로, 다시 북아메리카로, 결국 순수의 땅 그린란드까지 뻗어 나갔어요. 때마침 시작된 기후변화는 이주민의 확산과 개척시대를 재촉했어요.
하지만 20세기를 뒤흔든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냉전 탓에 북극을 향한 관심은 줄어들고, 대신 초강대국 간의 군사적 긴장이 북극을 지배하게 됩니다. 이후 소련이 페레스트로이카 perestroika정책을 시작한 1980년대 후반부터 북극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합니다. 1987년 미하일 고르바초프Mikhail Gorbachev 서기장이 무르만스크Murmansk선언을 하며 북극에서의 다자간 협력이 조심스럽게 시작된 것입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1996년 북극이사회를 탄생시키는 원동력이 됩니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북극은 또 한 번 세계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지요. 무르만스크선언 이후 북극 관련 논의는 주로 환경과 오염 문제를 중심으로 진행되었어요. 그런데 2007년 여름, 북극해를 덮은 얼음이 급속히 줄어들어 관측 역사상 최소 면적을 기록해 위기감을 조성합니다. 곧이어 2008년 유가가 사상 최고 가격인 1배럴당 145달러까지 치솟은 가운데 미국의 한 정부기관이 북극의 땅과 바다 밑에 엄청난 양의 석유와 가스가 묻혀 있다고 발표했어요. 이로써 전 세계가 북 극에 비상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어요. 한국은 2008년부터 북극이사회 읍서버observer국가가 되고자 노력했는데, 2013년 중국, 일본 등과 함께 자격을 획득하며 공식적인 북극 이해관계국으로 인정받았어요.
오랫동안 추위와 접근 수단의 부족으로 북극에서 인간 활동은 극히 제한적이었어요. 하지만 다른 지역의 인간 활동 때문에 기후가 따뜻해지고, 기술이 발전하며 북극은 모두가 탐내는 지구의 새로운 ‘프런티어frontier’가 되었어요. 이제는 북극의 이용을 둘러싸고 초강대국 간의 경쟁이 격화되고 있어요. 특히 멈추지 않는 기후변화는 수만 년간 잠들어 있던 동토와 얼음 바다를 깨우고,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을 정도의 급격한 변화를 일으키는 중입니다.
◈ 빙하가 움직이는 속도, 하루 40미터
'빙산'이라는 뜻의 일룰 리셋, 자연이 얼음과 눈으로만 빚어낸 조각 작품, 빙산과 직접 맞닥뜨리는 경험은 경이로움 그 자체입니다. 빙산은 말 그대로 산입니다. 특히 해수면 위로 100여 미터 넘게 솟아오른 푸르른 흰빛의 빙산 아래 서보면, 그 거대함에 압도됩니다. 물론 그보다 아홉 배 넘는 크기의 덩어리가 해수면 밑에 감춰져 있습니다.
이처럼 빙산 태곳적 자연 풍경으로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다가 아닙니다. 빙산은 바다표범이나 북극곰, 바닷새 같은 북극 동물의 휴식처이자 사냥터이고, 다른 해역보다 영양분이 부족한 북극 바다로 토양의 영양분을 옮겨다 주는 중요한 전달자입니다. 그래서 티 없이 깨끗해 보기 좋은 빙산보다는 흙이나 자갈 등으로 지저분해 보이는 빙산이 사실 생태계에는 더 중요합니다. 다만 무엇이든 항행하는 인간에게는, 실제 크기의 90퍼센트가 물속에 잠겨 있으므로 큰 위협이 됩니다. 그래서 일각一角 만으로 빙산을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삶은 계속된다고 할 수 있는데 빙상이나 빙하에서 빙산이 분리되는 속도와 빈도, 규모는 온난화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지표입니다. 일룰리셋의 캉이아Kangia피오르 입구는 만년설에서 흘러내린 빙하 승믁꾸얄륵Sermeq Kujalleq이 바다와 만나면서 빙산으로 조각나는 곳입니다. 150년 넘게 이어진 기후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소이기도 합니다. 승믁꾸얄륵이 1850년 이후 약 100년간 이동한 거리와 최근 20년간 이동한 거리를 비교해보면 온난화가 얼마나 급속히 진행되는 알 수 있습니다.
승믁꾸얄륵은 2004년 세계 자연유산으로 등록되었을 정도로 가장 이름난 빙하입니다. 캉이아피오르 입구에 있는, 인구 5,000명 남짓의 그린란드 제3의 도시 일룰 리셋의 뜻이 빙산이 이유입니다. 일룰 리셋에서 볼 수 있는 빙산들은 승믁꾸얄륵을 따라 40여 킬로미터를 흘러온 것입니다.
하루 이동 거리가 무려 40미터에 이르므로 승믁꾸얄륵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격렬하게 흐르는 빙하입니다. 그렇다 보니 거대한 빙산이 그 크기를 유지한 채 일룰 리셋까지 오는 경우가 흔하다고 합니다. 캉이아파오르 입구를 하늘에서 보면 크기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유빙 流氷 들이 북대서양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1912년 절대 침몰하지 않는다고 호언장담하던 타이태닉Titanic호의 첫 항해를 마지막 항해로 만든 유빙도 일룰 리셋에서 태어나 북대서양으로 흘러간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타이태닉호의 침몰로 충격받은 국제 사회는 이후 국제 유빙 감시대 International Ice Patrol, IIP를 설치해 지금까지 100년 넘게 운영하고 있습니다.
2008년 5월 북극해의 접해 있는 미국, 러시아, 그린란드(덴마크령이지만 고도의 자치권 보유). 캐나다, 노르웨이 등 다섯개 연안국의 외교부 장관들이 일룰 리셋에서 만나, 남극과 달리 북극에는 국제연합 United Nations, UN의 '해양법에 관한 국제 연합 협약 United Nations Convention on the Law of the Sea, UNCLOS' 외에 새로운 규범이 필요 없음을 선언했다고 합니다. 불과 1년 전 북극 해빙이 관측 사상 최저 수준으로 줄어들어 세계인의 주목이 집중된 가운데, 이런 선언이 발표되어 큰 논란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북극해에는 모든 국가가 권리를 가지는 공해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꼭 10년이 지난 2018년 10월 이들 연안국과 다섯 개 비연안국 대표들이 일룰 리셋에 모였다고 합니다. 과학적 근거가 마련될 때까지 북극해의 약 20퍼센트를 차지하는 공해에서의 수산업 활동을 16년간 유보하는 예방적 조치를 합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합의에서 눈여겨볼 점은 최초로 북극 관련 협정에 비북극권 국가들이 직접 참여했다고 합니다.
2018년 합의 서명한 비연안국은 유럽연합 Eutopean Union, EU, 아이슬란드, 중국, 일본 그리고 한국입니다. 유럽연합에는 핀란드, 스웨덴 등 북극권 국가가 가입되어 있고, 아이슬란드도 북극권 국가라는 점에서 실질적인 비북극권 국가는 중국, 일본 그리고 한국의 3개국입니다. 이 합의로 한국은 북극해에 관한 과학적 정보를 확보하고, 북극해의 지속 가능한 이용을 논의하는 데 더욱 깊숙이 관여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북극 문제는 아시아 국가들이 핵심 이해관계국으로 참여하는 것은 10년 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다고 합니다. 이후 중국과 일본은 연구 목적의 쇄빙선을 추가로 건조 중라고 합니다. 한국도 북극을 둘러 싼 국제 정세의 변화를 예측하고, 국가 이익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알려줍니다.
출처 : 북극 이야기, 얼음 빼고 김종덕,최준호 지음 책 참조.